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둔황과 투루판 (KBS_2011.11.05.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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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는 기원전 2-3세기경 중국 시안에서 로마를 잇는 교역의 길이자 문화와 예술, 종교가 교차했던 문명의 길이었다. 그중에서도 실크로드 주요관문이었던 둔황은 유구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다. 실크로드의 상인들은 시안을 떠나 본격적인 사막으로의 길을 떠나기 전 반드시 둔황에 짐을 풀어야 했다. ‘크게 번성하다’라는 뜻의 도시이름처럼 둔황은 고대 실크로드의 관문으로 큰 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수많은 중국의 왕조와 민족이 거쳐 가면서 둔황은 불교와 도교 그리고 조로아스터교 등 다양한 종교가 융합된 독특한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그러나 화려했던 둔황의 역사도 11세기 초 서하가 지배하면서 무려 1천 년 간 사막의 모래에 묻히는 비운을 맞게 된다.

수 천 년 변함없이 실크로드의 길목을 지켜온 밍사산의 모래바람 속에 말이다. 밍사산은 여의도 면적 3배 크기의 고운 모래 산 지역을 말하는데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낙타에 올라타 그 옛날 실크로드의 대상이 되는 체험을 즐기기도 한다. 그 옛날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로 발전했던 이곳이 이제는 관광지로 탈바꿈되어 다시 번영을 맞고 있는 것이다. 영겁의 세월을 거쳐 사막의 바람이 빚어낸 멋진 모래산은 한 폭의 그림이다. 밍사 산 모래 언덕에 올라서면 마음이 숙연해 지는 것도 잠시 발밑으로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황금빛 모래산속에 신비하게 나타난 오아시스 바로 월천각과 월아천이다. 비한방울 보기 힘든 사막 한가운데서 2천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마르지 않았다는 불가사의한 연못 그 모양이 초승달을 닮아 월아천이라 부른다.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베일에 가려져 있어 신비스러움을 더한다. 하룻밤 모래바람으로 지형이 바뀐다는 사막에서 오랜 세월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그러나 몇 천 년 동안 물이 마르지 않던 이 오아시스도 최근 사막화로 인해 인공적으로 물을 대는 실정이라니 안타깝기만 하다.

신비의 월아 천을 뒤로하고 밍사산 동쪽 산기슭으로 가면 둔황을 사막의 진주처럼 빛나게 하는 문화유산이 있는데 4세기 중엽부터 약 천년에 걸쳐 천 여 개의 동굴을 뚫어 완성됐다는 중국 최대의 석굴 사원 [막고굴] 웅장한 북대 불전으로 상징되는 막고굴은 당나라 시대 찬란했던 둔황예술의 결정체이자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불교미술 전시장이다. 밍사산 동쪽 끝 깎아지른 절벽 위에 무려 1.6킬로미터에 걸쳐 벌집처럼 뚫려있는 수많은 석굴들 현재 확인된 석굴의 숫자만 모두 492개에 이른다. 각각의 석굴 내부에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희귀한 불상과 벽화가 가득하다. 유네스코는 이 막고굴의 희귀성과 예술성을 인정해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 막고굴의 수많은 불상과 벽화 중에서도 61호굴의 벽화인 산시 성 ‘우타이산 지도’는 길이 13미터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실사지도이다.

또, 45호굴의 칠존 상은 당나라 시대에 제작된 불상 중에서도 예술적 극치를 보여주는 불교미술의 정수라 평가받고 있는데 이곳의 조각품중 석가의 제자인 가섭의 표정은 눈썹과 수염자국까지 세밀히 표현돼 둔황예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당나라 때 만들어진 220호굴의 벽화는 천 년이란 긴 시간을 견뎌내고도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데 1900년대 초 세상에 알려지면서 유물을 도난당하는 수난을 겪는다. 17호 석굴은 이른바 둔황문서라 부르는 고대문서가 무더기로 발견된 곳이다. 지금은 프랑스에 있는 혜초의 서역여행기 왕오천축국전 등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336년 막고굴이 생성되면서부터 불교순례지로 각광받았던 둔황은 혜초스님을 비롯해 수많은 순례자들이 남긴 유수의 유물은 오늘날 둔황의 가장 큰 자랑이다. 막고굴을 벗어나니 이 척박한 땅은 실크로드 대상들에겐 천산남로의 길목에 위치한 오아시스였다. 둔황과 함께 실크로드의 영화를 누렸던 투루판은 분지지형이어서 무덥기로 유명한데 투루판에 들어서자 붉은 화염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지열이 섭씨 80도까지 오른다는 화염산은 산전체가 불타는 듯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데 소설 [서유기]에 손오공과 현장법사 일행이 서역으로 가기 위해 이 불타는 화염산을 넘는 대목의 바로 그 장소다. 파초선으로 불을 껐다는 손오공의 영웅담은 작열하는 태양, 불타는 산과 어우러져 더욱 생생한 현장감으로 다가온다. 이글거리는 화염산을 따라 차로 30여분쯤 달리면 깎아지른 벼랑에 요새처럼 자리 잡은 석굴들이 있다.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한 집’이란 의미의 베제클리크 석굴이다.

7~10세기 불교유적이 남아있는 이곳은 서양 도굴꾼들에 의해 대부분 심하게 파괴되고 약탈당한 곳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석굴은 모두 83개지만 일부라도 남은 것은 단 40여개에 불과할 정도로 안타까운 곳이다. 이중 33번 굴의 뒷벽에는 석가의 열반을 애도하고자 100여 명의 왕자들이 도열한 그림이 남아 있는데요. 화랑모를 쓴 이 인물은 신라 왕자로 추정되는데 이채롭지만, 아직 확실히 밝혀진 바는 없다. 20세기 초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굴꾼들이 탐험대라고 찾아와 이곳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이중 삼중으로 파괴했는데 당시 훔쳐간 유물은 외국 박물관에 많이 남아 있다. 이 석굴들은 서구인들에게 철저히 짓밟혀 그 유구한 역사는 사라지고 빈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특히 독일인 르코크는 엄청난 유물을 약탈했는데 2차 세계 대전 때 폭격으로 유실됐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상처받은 베제클리크는 세상을 향해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묻고 있다.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도시로 화려한 문화예술을 꽃피웠던 둔황과 투루판. 시대가 변하고 실크로드도 퇴색했지만 역사의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해온 둔황과 투루판은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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