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낙화유수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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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77년 전인 1942년 5월, 오케레코드에서 발매된 남인수 선생님의 '낙화유수'는 이정숙 선생님의 '강남달'과 헷갈려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1927년 상영된 무성영화 '낙화유수'의 주제곡으로 쓰였던 이정숙 선생님의 낙화유수는 1929년 콜롬비아 레코드에서 발매되었는데 이 후 노래의 첫 소절의 가사를 따서 '강남달'이라는 제목으로 불리우게 되지요. 10여년이 지나서 남인수 선생님에 의해 발표된 이 '낙화유수'는 전혀 다른 곡입니다. 하지만 두 곡 모두 왈츠 리듬의 3/4박자 곡이라 혼동하실수도 있겠네요. 우리 가요역사 초창기인 1920~30년대의 곡들을 살펴보면 의외로 왈츠 곡들이 많습니다. '강남달'을 비롯해 '황성옛터', '타향살이'와 같은 곡들이 모두 3/4박자 왈츠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월북작가인 조명암 선생님의 가사에 이봉룡 선생님이 곡을 붙여 탄생된 '낙화유수'는 발매 후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게 되는데요. 세월의 무상함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희망적인 가사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던 것은 물론이고, 남인수 선생님의 인생과 비교되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남인수 선생님이 작고하신 후 1967년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이 강산 낙화유수'가 개봉되기도 했지요. 돈이 많아 '돈인수', 여복이 많아 '여인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그였지만 이난영 선생님에 대한 연모의 정은 평생 가슴에 간직하셨던 것 같습니다. 10대 시절 목포 가요제에서 연상의 여인 이난영 선생님을 만난 이후로 가슴속에 늘 사랑을 품고 있었으나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1958년이 되어서야 우여곡절 끝에 다시 재회하게 되지요.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요. 수십년을 돌아온 긴긴 사랑의 결실은 얼마 가지 못하고 1962년 남인수 선생님은 결국 이난영 선생님의 품 속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가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중 하나가 이 노래의 작곡가이신 이봉룡 선생님인데, 바로 이난영 선생님의 친오빠이자 김시스터즈의 아버지이자 외삼촌이셨습니다. 어린 남매는 목포에서 상경해 가요계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 했고, 그 이름은 역사 속에 전설로 자리매김하고 있지요. 1914년 목포에서 태어난 이봉룡 선생님은 동생 이난영 선생님이 작곡가 김해송 선생과 결혼하게 되면서 그에게 작곡을 배우게 되고 1941년부터 고운봉 선생님의 '선창', 이난영 선생님의 '목포는 항구다', 백년설 선생님의 '고향설', 최벙호 선생님의 '아주까리 등불' 등의 노래를 만들며 작곡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매제인 김해송 선생이 월북했다는 소문과 함께 행방불명되자 이난영 선생님을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을 떠납니다. 힘든 피난살이 속에서도 동생과 자식들을 돌보며 1953년에는 이난영 선생님의 두 딸 김숙자·김애자 선생님과 자신의 딸인 이민자 선생님으로 결성된 김시스터즈를 데뷔시키기도 했습니다. 김시스터즈는 한류의 원조로, 1959년 아시아 걸그룹으로는 최초로 미국무대에 진출하기도 했지요. 이봉룡 선생님은 작곡가로서 활동하기 전부터 남인수 선생님과 꼭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낙화유수' 이 후로도 많은 곡들을 함께 발표하며 두 분은 콤비로 활약하게 되지요. 이봉룡 선생님의 작곡 스타일은 개성이 강해서 멜로디에 힘이 있고 음의 진행이 뚜렷합니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잔디 얽어 지은 맹서야
세월의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

이 강산 흘러가는 흰 구름 속에
종달새 울어 울어 춘삼월이냐
홍도화(紅桃花)물에 어린 봄나루에서
행복의 물새 우는 포구로 가자

사람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보내고 가는 것이 풍속이러냐
영춘화(迎春花) 야들야들 피는 들창에
이 강산 봄소식을 편지로 쓰자"

여느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고초를 당했듯, 이 '낙화유수' 역시 금지곡으로 지정되는데 반야월 선생님이 개사해 불러서 노래의 명맥을 이어가게 되지요.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젊은 꿈을 엮은 맹서야
세월은 흘러가고 청춘도 가고
한많은 인생살이 꿈 같이 갔네

이 강산 흘러가는 흰구름 속에
종달새 울어울어 춘삼월이냐
봄버들 하늘하늘 춤을 추노니
꽃다운 이 강산에 봄맞이 가세

사랑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오면은 가는 것이 풍속이러냐
영춘화 야들야들 곱게 피건만
시들은 내 청춘은 언제 또 피나"

비슷한 듯 다른 정서를 느끼게 하는 개사 버젼의 가사입니다. 원곡에 비해 세월의 흐름을 비관적인 느낌으로 표현했다고 느껴집니다.

3절에 등장하는 영춘화(迎春花)는 뜻 그대로 봄을 맞이하는 꽃의 이름인데, 개나리처럼 노란색의 꽃이지만 개나리의 잎이 4개인 것에 비해 6개의 꽃잎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개나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체수가 줄어 흔히 보기는 힘들다고 합니다.

흘러가는 이 봄, 77년 전 5월에 발표된 '낙화유수'를 들으며 새로운 감회에 젖어봅니다. '애수의 소야곡'으로 시작된 남인수 선생님의 노래 인생은 '낙화유수'를 거쳐 '가거라 삼팔선', '이별의 부산 정거장', '추억의 소야곡', '산유화', '무너진 사랑탑'으로 이어져 가며 한국 현대사의 애환을 담아냈습니다.

'떨어지는 꽃이 강물 위로 흐르는 데서 넓은 세상을 알고[落花流水認天台]
술에 반쯤 취하여 한가하게 읊으며 혼자서 왔다[半醉閑吟獨自來].'

지는 꽃과 흐르는 물은 우리네 인생처럼 세월이 흘러도 덧없이 반복됩니다. 세월의 야속함은 우리를 눈물짓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더 푸른 여름의 녹음(綠陰)을 기다리고 겨우내 얼었던 물이 녹았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5월의 시작과 함께 '낙화유수'를 함께 감상하며 우리 인생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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