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동숙의 노래(1966)

Описание к видео 주현미 - 동숙의 노래(1966)

노래 이야기

제주도 해안에서 동쪽으로 50m 가량 떨어진 ‘난도’라는 무인도는
해마다 7월만 되면, 섬 전체가 새하얀 꽃으로 덮이는데요. 그 모습이 새하얀
토끼처럼 보인다고 해서 ‘토끼섬’이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난도’ 가득 새하얗게 피어난 꽃의 이름은 ‘문주란 꽃’이구요. 그 향기가 천리까지
퍼질 정도로 그윽하고 청순한 자태가 아름다운데요.

바로 이 꽃의 이름을 따서 ‘문주란’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소녀가 있습니다.
부산 출신의 열네 살 소녀 ‘문필연’은 나이답지 않은 저음과 짙은 음색으로,
동요보다는 가요를 즐겨 부르면서 각종 노래 경연대회를 휩쓸었구요.
그 소문이 서울에까지 널리 알려지고, 서울로 스카웃되면서 ‘극장 쇼’ 무대에도
서게 되지요.

열네 살의 청순한 외모에 호소력 짙은 노래를 부르는 소녀의 모습에 반한
작사가 ‘전우’씨는 청순하고 향기 짙은 ‘문주란꽃’을 떠올리면서
소녀에게 ‘문주란’이라는 예명을 지어줬는데요.
이것이 바로 천부적인 가수 ‘문주란’ 선배님의 음악인생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수많은 작곡가들은 문주란 선배님의 목소리의 매력에 빠져서 함께 음악작업을
하고 싶어했는데요.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당대 최고의 작곡가
‘백영호’선생님 이었습니다.
지금 들어도 독보적인 ‘문주란’ 선배님의 목소리는
그 당시 작곡가 ‘백영호’선생님의 귀를 사로잡았고요.
‘백영호’선생님은 문주란 선배님을 ‘지구 레코드사’의 사장에게 소개하면서
이렇게 호언장담했다고 하지요.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이미자’선배님 이후 최고의 가수가 바로 ‘문주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문주란 선배님의 음색에 가장 잘 맞는 노래를 만들었는데요.
그 노래가 바로 1966년, 문주란 선배님의 데뷔곡인 “동숙의 노래” 입니다.

“동숙의 노래“는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라고 알려져있는데요.
우연히, 작사가 ‘한산도’씨가 한 여성주간지에서 ‘사랑의 생활수기’ 하나를
읽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구로공단 가발공장’에 다니던 ‘오동숙’이라는
여공의 이야기였습니다.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십수년 동안 공장에 다니면서
월급은 동생들 학비와 부모님 생활비로 시골에 모두 내려보냈던 ‘동숙’은,
서른이 넘어서야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되고요.
종로에 있는 학원에 다니면서 학원의 총각 선생님을 사모하게 됩니다.
생전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동숙은, 장래를 약속하며 몸과 마음과 돈까지
모두 바치는데요.

가발공장이 ‘전자산업’에 밀려 감원을 하게 되고, 직장을 잃은 동숙은
학원비가 없어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도움을 청하지만, 여자가 무슨 공부냐 라는
냉대를 받게 되고요. 빈털터리로 남자를 찾아가지만, 이미 학원선생님은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약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외면하고 배신한 남자의 태도에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동숙은
결국, 남자에게 칼을 들고 복수하려다 실패하고, ‘살인미수죄’로 복역하게 됩니다.

가족과 생계와 사랑에 모든 걸 바쳤지만, 철저하게 배신당한 동숙의 기구한 이야기는
수기로 발표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요.
작사가 ‘한산도’선생님은 그 수기를 바탕으로 가사로 써내려갔고,
그렇게 탄생한 ”동숙의 노래”는 그해 최고의 노래로 사랑받게 됩니다.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
원한맺힌 마음에 잘못 생각에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
뉘우치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때는 늦으리

님을 따라 가고픈 마음이건만
그대 따라 못가는 서러운 이 몸
저주받은 운명에 끝나는 순간
님의 품에 안기운 짧은 행복에
참을 수 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
뜨거운 눈물”

1절에서는 동숙의 한 맺힌 후회가 그려지고,
2절에서는 출소 이후의 슬픈 재회를 상상해서 적어내려간 게 아닐까 짐작되는데요.
문주란 선배님 특유의 윤기없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비극적 사랑의 종말을 더 씁쓸하고, 마음 아프게 들려주는 것같습니다.

1960년대, 여성들에게는 사회진출의 문턱이 높았던 그 시절,
우리들의 누나들은 노래 속의 ‘동숙’이처럼 돈을 벌기 위해서 도시로 상경해서
고단한 ‘여공’의 삶을 살았고요.
방직공장과 가발공장, 신발공장 등에서 하루 18시간을 꼬박 일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역사는 그 시절을 억척스럽게 살아온 여공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독일로 파견 나갔던 간호사, 석탄을 캐러 머나먼 이국으로
떠났던 광부, 월남에 파병갔던 군인들, 뜨거운 중동 사막에서 모래먼지 마시며 일했던
근로자,
내 몸 부서져라 열심히 일하면서 오로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청춘도 꿈도
모두 포기했던 우리 부모님들과 누님들, 오빠들이 계셨기에
아마도 오늘날 우리가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금도 어디선가 많은 서러움을 삼키면서 가족들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동숙’이 있겠지요.
그 고단함을 위로하고, 더 이상 눈물과 꿈을 바꾸지 않기를 바라면서
“동숙의 노래” 감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Комментарии

Информация по комментариям в разработк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