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대중매체가 인류에게 가져온 근본적인 변화들.
이걸 알아야 세상 돌아가는 근본 이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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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기호로 이루어진 세상" - 출간 예정)
전자매체의 시초는 전신(telegraph)이다.
“tele”는 먼 곳이라는 뜻이고, “graph”는 쓴다라는 뜻이니, 전신은 멀리 있는 곳에 글을 쓴다는 의미를 지닌다.
전신이라는 매체의 등장은 근대사회의 성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전신이 나오기 전에는 커뮤니케이션과 운송이 같은 개념이었다.
예컨대 철도망이 곧 커뮤니케이션 망으로 인식되었다.
전신이라는 매체 이전에는 교통담당부서가 곧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서였다. 즉 기차 길이나 도로를 정비하는 것이 곧 통신망을 까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해되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할 때의 “길”은 운송수단이면서 통신수단이다.
조선시대의 역마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전신이라는 기술이 처음 나왔을 때, 그것은 철도망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보조적 수단이었다.
한국에서도 최초의 1888년 경인선이 생길 때 전신망도 같이 생겼다.
단선인 철도망을 오가는 기차가 서로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출발역에서 도착역에 기차가 출발한다고 알려야 할 절실한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철도망과 전신망은 같이 퍼졌다.
기차길이 지나가는 옆에 나무 기둥을 심고 그 위에 구리선을 매달아서 전신망을 연결하였는데, 그 나무기둥을 전신주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것이 네트워크 사회가 되는 첫걸음이었다.
전신주 혹은 전봇대라고 불리웠던 이 기둥들은 전신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전화선과 전깃줄도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요즈음에는 주로 전깃줄이나 인터넷 줄만을 떠받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둥을 전선주 혹은 전깃줄대라고 안하고 여전히 전신주, 전봇대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신이야말로 매체 발달 역사상, 가장 획기적이고 중요한 것이라 할만하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도 체계적이고도 지속적인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최초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공문서 하나 내려 보내려면 말 타고 뛰어가야 했다.
그러한 것이 역마 시스템이고 그러한 시스템을 잘 정비한 것이 징기스칸이었다.
다시 말해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와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매체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거대한 몽고제국이 세워질 수 있었다.
그러한 시기에는 교통과 커뮤니케이션은 동일했다.
즉, 메시지를 보낸다라는 것은 누군가 뛰어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신 이후로 커뮤니케이션과 운송은 개념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었다.
전신 이전의 증권시장을 상상해보자. 질레트 면도기 주식이 10% 올랐다 가정하자.
이러한 소식이 LA에 있는 투자자에게 전달되려면 그 당시 가장 빠른 교통(통신)수단이었던 기차를 통해 전달되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매수주문을 내면, 가는데 일주일, 오는데 일주일씩 걸렸을 테니까 2주이상 걸릴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라는 하나의 증시경제권의 성립이란 불가능했다.
전신망이 퍼진 이후에야 미국 증시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전신의 등장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시공간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기 시작했다.
또한 전신은 사실 최초의 디지털 매체이기도 하다. 이진법적인 기호를 전자석을 떼었다 붙였다 해서 전달했던 것이다.
전신은 인쇄매체인 신문의 기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
물론 신문은 역사가 길고 14,15세기에도 있었지만, 전신이 나오면서 우리가 보는 근대적인 신문으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다.
즉 전신망을 통해 전국적인 뉴스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뉴스까지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신 이전의 신문들은 그 지역의 뉴스만을 주로 다루었으며, 다른 지방의 뉴스는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나 다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신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전신망을 소유한 거대 기업들은 뉴스를 전신에 실어 신문에 공급하는 사업의 가능성을 깨닫고 앞다투어 거대 통신사를 세우게 된다.
로이터, AP, UPI, AFP 등 거대 통신사의 등장 이후의 근대 신문은 사실 단순한 종이인쇄매체라기 보다는 전자매체의 일부로 편입된 것이다.
전신이라는 매체 등장 이후, 커뮤니케이션은 곧 메시지의 전달이라는 개념도 생겨나게 되었다. (전신 이전의 커뮤니케이션은 주로 경험의 공유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전신은 또한 정보의 의미보다는 정보의 양을 계산해내는 정보이론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였다.
전신은 이처럼 정보사회의 기본적 개념과 틀을 깔아 놓은 매체다.
아울러 20세기에 등장한 라디오와 텔레비전 등의 매스 미디어는 인류사회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맥루한 역시 하벨로크와 마찬가지로 글말이 인간의 이성적 사고를 발달시켰으며, 씌어진 텍스트가 인간을 탈부족적인 개인으로 발전시켰다고 본다(McLuhan, 1964).
맥루한은 영상과 소리를 동시에 제시해 주는 영상 전자 매체, 특히 텔레비전은 이성적인 개인을 다시 비이성적 부족적 인간들로 퇴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시각 기관을 통해 좌에서 우로 순서대로 받아들여지는 텍스트와는 달리, 텔레비전의 시청각 정보는 눈과 귀를 동시에 사용하여 한꺼번에 받아들여지며, 이는 원시 부족사회를 결합시켰던 힘인 “터치(touch)”의 감각을 되살려, 지구 전체를 하나의 부족 사회인 지구촌(global village)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것이다.
옹 역시 영상 전자 매체가 제2의 입말 문화 (the secondary oral culture)를 가져왔다고 본다 (Ong, 1995, p. 136).
전자 매체는 또한 인류로 하여금 새로운 역사의 기록을 남기게 하였다.
문자 이외의 소리와 영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기록은 인류의 집단 기억에 새로운 양식을 부여하였다.
임진왜란에 대해 우리는 읽을 수밖에 없지만,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보고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영상 전자 매체는 생중계 방송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하나의 사건을 즉각적인 역사 (instant history)"로 만들어버리는 위력까지 발휘하고 있다.
인간의 달 착륙 장면이라든지, 텔레비전의 전쟁 중계 방송 등이 이러한 예에 해당하는데, 커뮤니케이션 학자 엘리후 캣츠와 다니엘 다이안을 이러한 현상을 "미디어 이벤트(media events)"라 부르고 있다(Dayan & Katz, 1992).
하나의 중요 이벤트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일은 원시 부족사회에서나 가능했던 일인데, 이것이 영상 전자 매체를 통해 전지구적인 규모로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라디오, 텔레비전 등의 전자 매체는 진정한 의미의 대중 사회를 생산해 낸 대중 매체이다.
물론 인쇄 매체가 대중 매체의 원형인 것은 사실이지만, 씌어진 텍스트의 전달은 문자 해독률 등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항상 제한된 숫자의 "읽는 대중"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리와 영상을 전자의 속도로 전송하는 전자 매체들은 이러한 제한 없이 거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즉각적으로 파고들어 그들 모두를 대중으로 전환시킨다.
대중 매체들은 또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에 기반을 둔 현대 자본주의를 만들어냈다.
이미 자세히 살펴보았듯이, 대중 매체에 기반을 둔 전국적 규모의 광고는 전국적 규모의 시장을 창출해 냈으며, 대량 소비 사회를 가능하게 했다.
19세기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전자영상매체 역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자리에서 그 영향의 결과를 일일이 다 언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가장 중요한 변화를 하나 꼽자면 공간과 시간에 대한 전혀 새로운 감각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국을 하나의 단일 시간 생활권으로 통일한 것은 라디오였다.
전국에 방송되는 라디오가 정확한 시각을 동시에 알려줌으로써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동일한 시간이라는 관념을 일상 생활 속에서 갖게 되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공적 영역에서의 사건 (정치적 연설이나 전쟁)을 가정으로 직접 배달함으로써 사적 영역을 공적화 시키고 한편으론 공적 영역을 사적영역화 시키는 결과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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