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물방아 도는 내력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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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6.25 전쟁 직후 1954년 발표된 '물방아 도는 내력'은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박재홍 노래로 발매 이후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곡입니다.
그 당시 우리 국민들의 좌절과 슬픔을 허황된 환상으로 풀어내지 않고, 간결하고 소박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슬픈 곡조의 많은 노래들이 큰 위로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작곡가인 이재호 선생님은 '물방아 도는 내력'을 통해 더 경쾌하고 친숙한 곡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었습니다.

모두가 동경하던 서울의 삶, 상경해서 인생역전을 꿈꾸던 사람들이 많던 시절이지만, 벼슬도 명예도 서울도 싫다고 하며 고향에서의 편안한 삶을 누리고 싶어 하던 사람들 또한 많았겠지요.
시대를 반영하듯 이 시대의 많은 노래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울고 넘는 박달재', '유정천리' 등의 노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박재홍 선생님은 1924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셨고 해방 후 1947년 오케레코드가 주최한 콩쿨을 통해 가수로 데뷔하셨습니다.
많은 원로 가수 선생님들이 그랬듯,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청년기에 6.25 전쟁을 겪으며 남북이 갈라지는 것을 볼 때까지 숱한 고초와 슬픔 속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던 것이지요.

박재홍 선생님의 최고 히트곡인 '울고 넘는 박달재'는 6.25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발표되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그곳에서 활동을 이어가셨는데, 작곡가 한복남 선생님이 부산 아미동 판자촌에 '도미도레코드'를 설립하면서 전속 가수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노래 '물방아 도는 내력'을 발표하며 큰 인기를 거두게 된 것이지요.
1959년 '유정천리'를 발표하고 1960년대에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셨습니다.

1980년대에는 KBS 가요무대를 비롯 TV방송에도 활발히 출연하면서 원로 가수로서의 모범을 보이시다가 1989년 66세의 나이로 소천하시게 됩니다.

'물방아 도는 내력은' 물방아라는 단어가 맞춤법 개졍을 거치면서 물레방아로 바뀌게 되고 이후에 발매되는 앨범에는 제목이 바뀌어 표기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두 가지 제목을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기심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고향을 잃은 길손 건너게 하며
봄이면 버들피리 꺾어 불면서
물방아 도는 내력 알아보련다

사랑도 싫다마는 황금도 싫어
새파란 산기슭에 달이 뜨면은
바위 밑 토끼들과 이야기하고
마을에 등잔불을 바라보면서
뻐꾹새 우는 곡절 알아보련다"

1절 가사에는 기심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 부분은 우리가 흔히 '길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가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문맥을 따져 볼 때 '기심'으로 부르는 것이 옮습니다.

'길쌈'이라는 말은 무명, 모시 등의 직물을 짜는 것을 말하는데 낮에 밭에 나가서 할 일이 아닌 것이지요. 대신 '김'을 맨다라는 말을 경상도 방언으로 '기심'을 맨다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김은 잡초를
뜻합니다.

이 노래가 발표된 지도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현실에 쫒겨 살다보니 노랫말 속 삶이 꿈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삶이, 이제 우리에겐 먼 나라 이야기 처럼 느껴집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 눈을 감고 이 노래를 부르며 가사속에 담긴 삶의 향기과 여유를 느껴봅니다.
'물방아 도는 내력'을 감상하시면서 저와 우리 모두 잠시나마 작은 위안 혹은 휴식이 되는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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