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침묵(沈默) [𝑷𝒍𝒂𝒚𝒍𝒊𝒔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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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참 어리석다. 나는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닥에 깨진 유리잔 조각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렇게 몇 번이고 컵을 테이블의 모서리나 경계에 두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또다시 그 다짐을 어겼다.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괜찮겠지라는 오만한 마음이 내게 벌을 내린 셈이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치우기 전에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유리잔에 차를 우리는 동안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멍청하게도 간단히 빈 그릇을 치우고는 컵을 어디에 뒀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다 실수로 컵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온 바닥에 뜨거운 차가 쏟아져 발이 욱신거린다. 나는 몸 깊숙이부터 차오르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 그 자리에 앉았다. 왼손을 펴 큰 유리잔 조각들을 올려놓았다. 불규칙적으로 깨진 유리 조각들을 보자 머릿속에 뜬금없는 것들이 떠오른다. 새, 주전자, 불가사리 모양. 이건 신발을 닮았네? 사실 유리 조각들에서 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불안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이런저런 의미 없는 것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냥 처절하게 깨져버린 유리조각이다. 닮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아무 단어들을 유리조각과 닮았다고 억지를 부려본다. 기분 좋게 시작해야 할 아침부터 '나는 어리석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우울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오늘은 그러고 싶지는 않다. 모처럼 일찍 일어난 날이고, 왠지 모를 산뜻함에 가벼운 아침까지 먹었다. 거실은 열어둔 창밖에서 들어온 햇빛으로 환했고 약간은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아 기분이 좋았다. 내 바보 같은 행동 전까지는 말이다. 바람이 불어 내 머리칼을 조금 흔들었고 나는 오른 손목을 이용해 얼굴로 떨어진 옆머리를 어깨 뒤로 힘겹게 쓸어 넘겼다. 미약하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내 마음을 조종하려 한다. '나는 나를 잘 통제할 수 있다. 나는 손쉽게 내 마음에 조종당하지 않을 것이다.' 힘겹게 마음속으로 이런 말들을 의미심장하게 되뇌었다. 가까운 조각들을 모두 손에 담았고 앉은 채로 조금 움직여 거리가 떨어진 유리조각을 주우러 조금 위치를 옮겼다.

" 물고기 모양, 오두막 모양, 음... 이건 아무리 봐도 모르겠으니 다음 조각으로. "

깨진 유리조각을 보고 마음속에서 반복되던 일관성 없는 단어들은 힘을 더 얻기 위해 내 입 밖으로 작게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 이건... 화분. 화분... "

문득 화분 모양의 유리 조각을 보고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며 작은 화분을 하나사 오자는 생각이 들었다. 조각이 화분을 닮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물론 화분 모양의 조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단지 뭔가 새로운 것이 하고 싶었고, 며칠 전부터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 앞에 화분을 하나둘 키워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문득 그 생각이 떠오른 것뿐이다. 유리 조각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때 유리 조각을 옮기던 손끝에 찌릿한 느낌에 움찔하며 바닥에 조각을 떨어트렸다. 제발 아니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손을 뒤집어 느낌이 있었던 검지 끝을 바라봤다. 손가락 끝마디 중간에 다른 피부보다 하얗게 세로로 실선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 곧이어 조금씩 그 하얀 실선은 붉게 물들었다. 뒤늦게 아무렇지 않던 손가락에서 쓰라림이 느껴진다. 결국, 나는 손에 잘 모아놓은 유리 조각을 땅에 떨어트리고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기분 좋게 시작했던 오전 내내 울며 바닥을 치우고, 침대에서 소리 없이 온 눈물을 쏟아내 버렸다.

눈을 떠보니 동욱이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잠에서 깨 인기척이나 눈만 떠보니 동욱이 있었다.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 아무런 인기척 내지 않고 가만히 바라봤다. 다음 주에 시험이 있다더니 그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입을 삐쭉 내밀고 뭐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한참을 울다 이러다간 주말을 망치겠다 싶어 냅다 자 버렸는데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나 보다. 동욱과 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동욱에게서 섬유 유연제와 섞인 옅은 담배 냄새가 난다. 그다지 나쁜 향기는 아니었다. 나는 잠시 눈만 껌뻑거리며 동욱을 멈추지 않고 바라봤다.

" 왜 안 깨웠어? "
" 어? 이수야, 일어났어? "

동욱은 화들짝 놀라 날 바라보고는 책을 덮었다. 그러고는 다리와 팔을 쭉 펴고 기지개를 켠다. 나는 한쪽 팔을 동욱에 허리춤에 감으며 뒤집어 누웠고 동욱은 큰 손으로 내 등을 쓸어내렸다.

" 아침에 일어났다는 연락 확인했는데 집에 와보니 다시 자고 있더라고. 어젯밤에 또 잠을 잘 못 자서 자는 것 같아서 그냥 뒀어. "
" 지금 몇 시야? "
" 두시 반. "
" 밥은? "
" 배고파서 테이블 위에 있는 빵 몇 조각 먹었어. "
" 잘했네. "

밤에는 창밖에서 난 작은 소리에도 깨는데 낮에 자는 잠은 이렇게 사람을 둔하게 만든다. 동욱이 우리 집에 문을 열고 들어와 빵까지 먹을 정도면 이리저리 돌아다닌 모양인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동욱은 그리 조용한 사람이 아니다. 나와 다르게 동욱은 조그만 동작도 크게 크게 움직이고 이런저런 소리가 난다. 조금은 소란스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보다 섬세하게 움직인다. 동욱은 손가락으로 내 등에 원을 계속 그렸다. 아무런 의미는 없을 것이다.

" 밥은 먹었니? "
" 아침 간단히 먹었어. 먹고 내가 좋아하던 유리잔을 깨고 기분이 안 좋아져서 그냥 자 버렸어. “

내 기분에 지고 분해서 울어버렸단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 그런 것 같더라. 신발장 앞에 신문지 봤어. 컵도 하나 비어있는 것도 봤고. 청소기는 돌렸어? "
" 응, 물걸레로 다 닦았어. "
" 잘했어. "

울면서 유리 조각들을 정리하고, 눈물이 온 얼굴에 범벅된 상태로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했다. 그러고도 울음이 멈추지 않아 이불 속에 들어와 한참을 울었다. 그칠 만도 했지만, 오늘 유독 더 서러움에 하염없이 울었다. 동욱은 등에서 손을 내려 내 손을 붙잡았다. 따뜻하고 힘이 가득한 손이 내 손을 잡자 괜히 마음이 놓인다.

" 다음 주에 시험 볼 거 공부하고 있었어? "
" 음... 테이블에 앉아서 볼 걸 그랬네. 허리 아프다. "

동욱은 좋은 사람이다. 모나지 않은 성격에 자기 일에 집중하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적당히 큰 키에, 말씀한 외모, 서른이 넘는 남자에서 나오는 듬직함과 여유로움까지 평범하고 좋은 사람이다. 항상 날 아껴주고 날 보러 와 준다. 평범함 속에서 내가 그 몰래 우울해하고 스스로 무너져 내릴 때 본능적으로 날 위로해 주는 특별함도 가졌다. 그럴 때마다 평소에 그토록 눈치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귀신같이 내 기분을 알고 위로해 주는지 알 수 없다. 가끔 내 마음과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실을 모른 체하고 지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몇 번 시험 삼아 유도를 해봤지만 역시나 이 곰은 모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절대 그에게 내 불안한 마음을 말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 죄책감이 들긴 하지만 왠지 그에게 이것만은 숨기고 싶다. 그에게 모든 벽을 허물은 나지만 왠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동욱에게만 숨기고 있는 사실은 아니다. 몇몇 친구들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내 상태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남몰래 수면제를 먹고, 남몰래 오늘처럼 눈물을 쏟으며 남몰래 편히 숨 쉬지 못한다. 만약 동욱이 내게 이런 사실을 숨겼다면 조금 화가 날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기적인 내 마음에 동욱이 화날 걸 알지만, 이 사실을 악착같이 숨겼다. 몇 번 말하려 기회를 봤지만 그럴 때마다 온 신경이 곤두서고 불편한 마음이 커졌다. 오직 내 마음의 평온을 위해서 숨긴 것이란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들키지 않은 거짓말은 모르는 사람에게는 진실이다. 굳이 동욱이 알고 있는 진실을 흔들고 싶지 않아서 그에게 숨긴다고 내심 믿고 싶다.

" 공부할 거면 앉아서 해. 난 조금 더 누워있으려고. "
" 공부하는 거 아니야. 시험 준비는 미리 다 해놨어. "
" 그러면 뭐 보고 있는데? “
" 몰라? 저기 책장에서 하나 골라왔어. 제목이 뭐지 이거? "
" 제목도 모르고 읽어? "

동욱은 싱긋 웃으며 내 옆에 눕고는 날 안았다. 우리는 잠시 그러고 누워 오늘 뭐 할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와 다르게 계획적인 동욱과는 이런 대화가 자주 오고 간다. 일어나자마자 산뜻하고 좋았던 기분은 컵을 깨며 그대로 부서져 버렸고, 부서진 기분 조각들이 동욱에게 느낀 죄책감으로 변해 내 온몸에 박혔다. 동욱의 앞에서 이 악물고 그렇지 않은 척하며 하루가 지나갔다. 좋은 날씨 아래 산뜻한 바람을 받으며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요즘 줄 서서 먹는다는 맛집을 운이 좋게도 줄 없이 바로 앉아 먹었다. 운전을 해야 하는 동욱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간단히 맥주 한 잔을 혼자 마셨고 편하게 집까지 도착했다. 간단한 입맞춤을 하고 그를 보내기 전까지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하루였다. 동욱에게는 그리 보일 것이다. 그래, 그는 그런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떠나는 동욱의 차의 뒤를 바라보며 울컥한 마음이 참지 못할 만큼 커졌다. 집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무표정한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힘겹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와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그대로 엎드려 펑펑 울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나는 나를 잘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다. 분명 아침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화분을 사 오자고 다짐했는데 깜빡 잊어버려 우는 것이라고, 절대 내 마음에 굴복하고 져서 우는 게 아니라고 철석같이 반복하며 되뇐다. 나는 이렇게 참 어리석다.

00:00 우우우 나의 사랑 - 음성녹음 (音聲錄音)
04:44 당신은 늘 고개를 끄덕입니다 - 허회경
08:21 우린 흐를 뿐이야 (with 박현서) - 이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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