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본기(4) 진시황제의 최후 그리고 여산릉 / 마지막 5차 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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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사기 본기
진시황제의 최후 & 여산릉(4) – 진시황 본기

내용 개략 소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문학 TV 고경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진시황의 독재권력이 부른 과오 즉 분서갱유(焚書坑儒)에 대한 이야기와 절대권력을 등에 업고 직접 신선이 되고자 했던 이야기를 말씀드렸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진시황제가 마지막 순행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 과정과 시황제를 안장한 여산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잠깐 이야기에 들어가기전에 여러분께 진시황제를 안장한 여산릉에 대한 질문 한가지 드리겠습니다.
만약 여산의 황제릉을 발굴한다면 진시황제의 유해는 미라로 존재할까요?.... 진나라 다음을 이었던 한나라 서한 시대의 한 귀족 부인이 미라로 발견되었던 사건을 여러분들은 아시는지요?... 그 사건은 ‘마왕퇴묘’라고 불려집니다.지금까지 이집트에서 발굴된 여러 미라는 모두 죽은 사람의 속 내장은 비워졌고 겉 가죽만 썩지 않도록 처리되어 매장되었던 건식 미라들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한나라 시대의 묘 마왕퇴에서 발굴된 미라는 그 시신이 건조되지 않고 생체를 그대로 유지한 체 2100년을 무덤 속에 보존되어 오다가 1971년 발견되어 발굴되었습니다.
부검 결과도 놀라웠습니다. 이름은 ‘신추’ 부인, 죽은 그녀의 나이는 50세 정도, 그녀의 내장 상태는 완벽했고, 혈관 속 피를 분석했더니 혈액형은 A형으로 나왔습니다. 이를 통해 신추 부인은 동맥경화, 담결석, 당뇨병, 심장병, 고혈압, 허리디스크, 비만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그녀가 50세쯤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했으며 참외 씨가 위장에서 발견된 점으로 보아 여름철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진나라를 이은 다음 왕조는 한나라입니다. 근접했던 진나라와 한나라 연대를 생각한다면 귀족 부인의 묘가 이 정도인데 하물며 황제였던 시황제의 시신과 묘는 어떠할까요?..... 과연 진시황제는 현재 미라로 존재할까요?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시황제는 절대 미라로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마천 사기의 기록을 따르면 시황제는 전국 순행 중 사망하게 되고 함양 수도까지 운구 도중 이미 부패되고 2달 정도 지난 이후에서야 여산에 묻히게 되었으니 말이죠…

자 그럼 오늘 내용인 진시황이 죽음을 맞게 되는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오늘 이야기 순서는
1) 먼저 진시황의 죽음을 사전에 예견 했었던 내용과
2) 진시황제의 마지막 5차 순행 일정을 따르며 마지막 죽음을 맞은 사건과 그의 사후 진시황의 묘지 여산릉이 어떻게 조성되었고 매장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을 사마천 사기 기록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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