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추억의 소야곡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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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우리 옛노래들 중에는 '소야곡'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노래들이 많습니다. 한자로는 '小夜曲'이라고 표기하고 영어로는 '세레나데(Serenade)'라고 부르는 소야곡의 기원은 17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소규모의 관현악 모음곡으로, 사랑하는 연인의 창가에서 불러주거나 연주하는 음악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등의 작품을 예로 들 수 있지요.

남인수 선생님의 곡 '애수의 소야곡'은 주현미TV를 통해 먼저 소개해드렸고 오늘은 역시 남인수 선생님의 히트곡인 '추억의 소야곡'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또 다른 소야곡인 '이별의 소야곡'까지 3곡을 묶어 남인수의 3대 소야곡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추억의 소야곡은 1956년 빅터레코드에서 발매되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불행히도 지금은 이 초판을 듣기 어려운데, 1960년대에 미도파 레코드에서 남인수 걸작선 제3집을 발표하면서 레코드판의 뒷면에 다음과 같은 소개말을 적었습니다.

"이 판을 내기까지
本籍은 慶南 晋州이며 本名은 荌文秀 生日은 1918年 10月 11日입니다.
1936년 日本 東京 東海商業學校를 卒業하고 同年 OK레코-드社에 作曲家 朴是春氏와 콤비가 되어 첫 吹込 "哀愁의 小夜曲"을 비롯하여 "꼬집힌 풋사랑" "물방아사랑" "서귀포 七十里" "人生出發" "無情千里" "감격시대" "港口의 靑春詩" "靑年故嚮" "눈오는 네온街" "靑春港口" 등 數많은 힛트曲을 連發하여 단연 歌謠界의 王子의 地位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유감된 것은 氏의 힛트曲 追憶의 小夜曲을 氏의 宿患으로 再吹込이 不能하게 됨에 氏의 목소리와 비슷한 新人歌手를 物色中 多幸이나마 李靑峰 君이 彗星과 같이 나타나 追憶의 小夜曲을 吹込하여 南仁樹 傑作集에 삽입하게 된 것을 슬프면서도 기쁘게 生覺하는 바입니다."

1962년 6월 26일에 남인수 선생님께서 소천하셨으니, 이 모음집은 그 직전에 발매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겠네요. 글에는 남인수 선생님의 출생과 히트곡들이 소개되어있는데, 본명을 '荌文秀'(안문수) 라고 표기한것은 편집자의 실수로 보여집니다. 어릴 적 최씨 가문에서 태어나 '최창수(崔昌洙)'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후에 어머니의 성을 따르면서 강문수(姜文秀)로, 또 가수로서의 이름은 남인수(南仁樹)로 활동하셨는데 '안'씨 성을 사용한 적은 없습니다.

앨범 소개글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남인수 선생님의 숙환으로 재취입이 불가능한 상태라서 목소리가 비슷한 신인가수를 물색하던 중 이청봉 군이 혜성과 같이 나타나 '추억의 소야곡'을 취입해서 앨범에 실을 수 있어 슬프고도 기쁘다는 대목인데요. 모창 가수들이 판을 치던 시절이라 어떤 노래가 진짜 오리지널 가수의 목소리인지 구분하기 힘든 곡도 많은데, 더욱이 남인수 선생님은 그 중에서도 가장 모창 가수가 많은 경우였다고 하니 레코드사에서 발벗고 나서서 모창가수를 찾아서 앨범을 취입했다는 대목은 무척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가수의 베스트 앨범을 제작하는데 모창가수가 와서 녹음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지만, 그렇게라도 이 '추억의 소야곡'을 앨범에 싣고자 하는 제작진의 열정이었을까요, 아니면 남인수 하면 떠오르는 노래들 중에 이 노래를 빼서는 안된다는 대중의 기다림이었을까요. 어쨌든 1960년대 초반에 발표된 '남인수 걸작집'에 실린 '추억의 소야곡'은 남인수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이 때 모창가수로 등장한 이청봉 선생은 후에 이름까지 남강수로 바꾸고 본격적인 남인수 모창가수로서의 길을 걷게 되지요. 모창가수 남강수의 목소리는 남인수 선생님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해서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하네요.

작사가 한산도 선생님과 작곡가 백영호 선생님은 콤비로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얼마 전 주현미TV를 통해 들려드린 손인호 선생님의 곡 '해운대 엘레지'도 이 두분의 합작품인데, 사실 이미자 선배님의 히트곡들을 정말 많이 만드신 분들입니다. '옥이 엄마', '잊을 수 없는 연인', '빙점', '지평선은 말이 없다' 등의 곡들을 콤비로 발표하셨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곡은 바로 '동백 아가씨'이겠지요. 말씀드리기 껄끄러운 이야기이긴하나, 1978년 한산도 선생님이 작곡가 백영호 선생님을 상대로 고소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답니다. '동백아가씨'를 비롯해 함께 작업한 노래들 중 상당수가 사실은 한산도 선생님이 작곡을 한 노래라는 이유였지요. 검찰에서는 뚜렷한 증거가 없어 유야무야 사라지는 사건이 되었지만, 사실 이 시대는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어있지 않던 시대라 이런 류의 소송이 벌어졌다는 것이 매우 특별한 일이 되었답니다.

"다시 한번 그 얼굴이 보고 싶어라
몸부림치며 울며 떠난 사람아
저 달이 밝혀주는 이 창가에서
이 밤도 너를 찾는 이 밤도
너를 찾는 노래 부른다

바람결에 너의 소식 전해 들으면
행복을 비는 마음 애달프구나
불러도 대답 없는 흘러간 사랑
차라리 잊으리라 차라리
잊으리라 맹서 슬프다"

밤 하늘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불러주는 '세레나데'라고 보기엔 참 구슬픈 가사이지요. 노래를 부르는 모양은 같으나 들어줄 상대가 떠나 이미 없다는 사실이 '추억의 소야곡'을 더욱 슬프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연인과, 가족과, 친구들과, 은사와,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이별은 늘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차라리 잊으리라 멩세하면서도 잊지 못해 몸부림치는 괴로움이, 노래를 나누는 우리들을 눈물짓게 만들고 있네요. 깊은 가을 '추억의 소야곡'을 들으며 슬프지만 잊을 수 없는 우리들의 '추억'속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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