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이별의 인천항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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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우리 대중가요에서 ‘항구’는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극적인 모티브로 등장할 때가 많습니다. 이별의 뱃고동이 울리면, 님을 두고 떠나는 남자와 순정을 간직한 채 떠나는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의 이별이 그려지고요. 이런 노래는 부산항을 배경으로, 목포항을 배경으로, 그리고 인천항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는데요. 박경원 선배님의 ‘이별의 인천항’ 역시 사랑을 남겨둔 채 떠나는
마도로스의 사랑을 그린 노래로 인천을 대표하는 곡입니다.

박경원 선배님은 인천 토박이로 유명하죠. 인천시 중구 신포동에서 제법 규모 있는 미곡상집(쌀집) 7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나서 중학교 2학년 어린 나이 때부터 각종 콩쿠르를 휩쓸었는데요. 상업고교를 거쳐서 동국대 경제학과에 다녔는데, 대학 2학년 때.. 계림극장 주최 전국 남녀 가요콩쿠르에서 당시 유행하던 현인 선배님의 노래를 불러서 1등을 차지하면서 작곡가 전오승 선생님의 눈에 띄었고, 오아시스 레코드사 전속가수로 픽업됩니다.

박경원 선배님은 발성과 음정이 아주 정확해서 정통파 가수로 통했는데요. 1952년에 같은 레코드사 소속가수였던 ‘명국환’ 선배님과 함께 데뷔하게 됩니다. 앨범 앞면엔 명국환 선배님은 ‘백마야 우지 마라’, 뒷면에는 박경원 선배님의 ‘비애 부루스’가 실렸는데요. 그 앨범을 발표하고나서 인천이 고향이었던 박경원 선배님은 작곡가 전오승 선생님을 인천 작약도로 초대했고요. 인천 작약도에서 텐트를 치고 며칠 머무는 동안 작곡가 전오승 선생님이 노래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 노래가 바로 ‘이별의 인천항’입니다.

‘이별의 인천항’은 전오승 선생님이 작사 작곡한 노래인데요. 작사가 이름이 ‘세고천’이라고 표기된 것은 전오승 선생님이 작사가로 사용한 예명입니다. 마도로스의 사랑과 이별을 경쾌한 멜로디로 담아내면서 ‘이별의 인천항’은 발표하자마자 큰 히트를 기록했는데요. 얼마나 인기가 있었냐면, 그 당시
레코드상에서는 문앞에 ‘이별의 인천항’ 가사를 적어서 붙인 다음 하루종일 이 노래를 틀었고요. 그러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춰서서 문에 붙어있는 가사를 보고 따라 부르면서 합창을 할 정도였습니다.

‘ 쌍고동이 울어대는 이별의 인천항구
갈매기도 슬피 우는 이별의 인천항구
항구마다 울고 가는 마도로스 사랑인가
정들자 이별의 고동소리 목메어 운다

​ 등대마다 님을 두고 내일은 어느 항구
쓴웃음 친 웃음에도 순정은 있다
항구마다 울고 가는 마도로스 사랑인가
작약도에 등대불만 가물거린다

​ 마도로스 수첩에는 이별도 많은데
오늘밤도 그라스에 맺은 인연을
항구마다 품고 가는 마도로스 사랑인가
물새들도 눈물 짓는 이별의 인천항구 ’


‘이별의 인천항’이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박경원 선배님은 이후에도 ‘만리포 사랑’, ‘나포리 연가’, ‘청춘은 산맥을 타고’, ‘내 사랑’처럼 낭만과 정감있는 노래들을 많이 불렀는데요. 그중에서 ‘이별의 인천항’은 발표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노래방에서 즐겁게 부르고, 여러 후배 가수들이 무대에서 즐겨 부르는 명곡입니다. 이 곡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 받는 것은 폴카풍으로 경쾌한 멜로디에 가사가 주는 애절함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는 점과 슬픈 이별을 떨쳐내듯 경쾌한 멜로디가 한국전쟁 이후 피폐해진 상황을 떨쳐내려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인데요.

인천 토박이였던 박경원 선배님이 불러서 크게 히트한 ‘이별의 인천항’은
‘김트리오’의 ‘연안부두’와 함께 1999년에 ‘인천의 노래’로 선정되었고요.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 ‘이별의 인천항’ 노래비가 세워져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이제 설날이 며칠 안 남았는데요. 마도로스의 사랑과 이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이별의 인천항’을 흥겹게 감상하시면서
경쾌하고 희망 찬 새해를 맞이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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