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무너진 사랑탑 (1958)

Описание к видео 주현미 - 무너진 사랑탑 (1958)

노래 이야기

1935년 경남 진주에서 교복을 입고 무작정 상경해 가수가 되겠노라고 레코드사를 찾아간 17세의 당찬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몇년 뒤 1938년에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만은~"으로 시작하는 '애수의 소야곡'을 불러 크게 히트하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 가요 역사상 최고의 스타 가수 남인수 선생님의 탄생이었습니다.

시에론 레코드에서 '눈물의 해협'이라는 곡으로 데뷔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남인수 선생님은 1937년 오케레코드로 소속을 옮기게 됩니다. '비틀즈'를 거절했던 영국 데카(Decca) 레코드의 후회가 이런 것이었을까요? 이후 가요계의 황제로 군림하게 될 남인수 선생님을 놓친 시에론 레코드의 결정은 회사의 판도를 뒤집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지요. (물론 비틀즈의 일화는 이보다 한참 후인 1962년의 일입니다.)

어찌되었건 오케레코드로 이적한 남인수 선생님은 데뷔곡이었던 '눈물의 해협'을 가사를 바꾸어 부르게 됩니다. '애수의 소야곡'이라는 제목으로 이부풍 선생님이 새 가사를 붙이셨는데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국민가요로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지요. 결국 남인수-박시춘이라는 최고의 콤비의 시작은 '애수의 소야곡'이었던 셈이네요. 기회가 되는대로 '주현미의 달달한톡'을 통해 박시춘 선생님과의 생전의 에피소드들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또 오늘 불러드리는 노래 '무너진 사랑탑'의 작사가이신 반야월 선생님과의 일화도 기회가 되는대로 전해드리고 싶네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참 그립고 보고 싶은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남인수 선생님은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미성의 가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꼬집힌 풋사랑', '낙화유수', '가거라 삼팔선', '청춘고백', '이별의 부산정거장', '추억의 소야곡', '산유화'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명실공히 가요 역사상 최고의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지요.

'무너진 사랑탑'은 남인수 선생님의 마지막 히트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62년 45세의 나이로 소천하시기 전 1958년 발표하신 곡이기에 이 후의 새로운 곡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반짝이는 별빛 아래 소곤소곤 소곤대던 그날 밤
천 년을 두고 변치 말자고 댕기 풀어 맹세한 님아
사나이 목숨 걸고 바친 순정 모질게도 밟아놓고
그대는 지금 어디 단 꿈을 꾸고 있나
야속한 님아 무너진 사랑탑아

달이 잠든 은물결이 살랑살랑 살랑대던 그날 밤
손가락 걸며 이별 말자고 울며 불며 맹세한 님아
사나이 벌판 같은 가슴에다 모닥불을 질러 놓고
그대는 지금 어디 행복에 잠겨 있나
야멸찬 님아 깨어진 거문고야

봄바람에 실버들이 하늘하늘 하늘대던 그날 밤
세상 끝까지 같이 가자고 눈을 감고 맹세한 님아
사나이 불을 뿜는 그 순정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그대는 지금 어디 사랑에 취해 있나
못 믿을 님아 꺾여진 장미화야"

남인수 선생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음반사들은 그의 노래를 사칭해서 많은 모창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우리가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는 남인수 선생님의 노래 중 50% 정도가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분의 모창 앨범이라고 하니 그 시절 선생님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입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무대를 사랑했던 가수, 무대에서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잠을 잘 때에도 머리카락이 닿지 않는 작은 목침을 사용했던 가수. 남인수 선생님은 우리 시대에도 전설로 남아 지금까지 그 노래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Комментарии

Информация по комментариям в разработк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