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청춘의 꿈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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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이 '청춘의 꿈'을 김용만(金用萬) 선생님의 노래로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는데요. 김용대(金龍大) 선생님에 의해 만들어지고 불려졌으나 음반으로 처음 취입된 것은 1960년, 김용만 선생님의 노래로 녹음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싱어송라이터라 할 수 있는 김용대 선생님이 1947년 무대에서 처음 불렀다고 알려지고 있는 '청춘의 꿈'은 이후 입소문을 타고 큰 인기를 끌게 되는데요. 사실 1947년이라고 하는 것도 음반으로 기록되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는 1942년 경 발표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본인의 노래가 이렇게 큰 인기를 얻게 될 줄 모르셨던 걸까요. 김용대 선생님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가정을 꾸리셨다고 하네요. 이후에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활동을 하셨다고 하는데 선생님과 관련된 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더 큰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1926년 12월 경남 울산 출생으로 알려진 김용대 선생님은 울산농업학교를 중퇴하고 10대의 나이에 극단 황금좌에 입단했습니다. 황금좌는 1933년 결성되어 광복 때까지 수도권과 지방을 순회하면서 신파극, 악극 등을 공연한 극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0년대 후반 이 극단에서 '처녀 뱃사공', '오동동 타령'의 주인공 황정자 선생님과 호흡을 맞추며 막간가수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두 분 모두 10대의 어린 나이에 소년소녀 가수로서 활동을 시작한 셈이네요. 두 분의 인연은 40년대에 이르러 신태양악극단으로 함께 거처를 옮기며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1948년 김용대 선생님이 일본으로 떠나면서 첫사랑(?)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지만 두 분 모두 60년대에 타계하시면서 정확한 이야기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1960년이 되어서야 김용만 선생님의 목소리로 '청춘의 꿈'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고 있던 노래가 한참 후에 음반으로 제작되다니, 뭔가 순서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50년대 이전까지는 흔히 '돌판'이라고 부르는 SP 음반이 대세였는데 60년대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LP판이 대중화되기 시작합니다. 분당 33회전을 하는 LP에 반해 78회전을 하는 SP판은 실제로 생산과정에서 돌가루가 들어가기 때문에 '돌판'이라는 속칭이 붙여졌다고 하네요. 음반의 형태가 바뀌는 과도기에서 이 '청춘의 꿈' 음반은 SP와 LP의 두 가지 형태로 모두 생산되는데요. SP음반에서는 그 제목이 '청춘은 꿈'이라고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기록에는 '청춘은 봄이요'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있는데, LP의 제목과 다른 기록들을 살펴보면 '청춘의 꿈'으로 부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언제나 즐거운 노래를 부릅시다
진달래가 쌩긋 웃는 봄봄
청춘은 싱글벙글 윙크하는 봄 봄봄 봄봄봄봄
가슴은 두근두근 청춘의 꿈
산들산들 봄바람이 춤을 추는 봄봄
시냇가의 버들피리는 삐삐 삐리비리 비
라라라라 릴리리 봄봄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청춘은 향기요 봄은 새 나라
언제나 명랑한 노래를 부릅시다
개나리가 방끗 웃는 봄봄
청춘은 소곤소곤 속삭이는 봄 봄봄 봄봄봄봄
종달새 지지배배 희망의 봄
산들산들 봄바람이 춤을 추는 봄봄
시냇가의 버들피리는 삐삐 삐리비리 비
라라라라 릴리리 봄봄
청춘은 봄이요 봄은 새나라"

정확하지 않은 노래의 정보가 많다보니 작사가의 이름 또한 잘못 알려진 것이 많은데요. '청춘의 꿈'의 작사가가 '추미림'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는 곳이 있습니다. 추미림이라는 이름은 작고하신 반야월 선생님의 또 다른 필명인데, LP음반이 대중화되고 과거의 곡들을 리바이벌해서 발표하는 곡들이 많아지면서 개사 혹은 부분 개사를 거치면서 반야월 선생님의 손을 거쳐 재탄생된 곡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이 노래의 본래 작사가는 김용대 선생으로 표기하는 것이 옳습니다.

김용대 선생님의 작품이라고는 하나, 그 원곡을 들을 길이 없어 우리에겐 김용만 선생님의 곡으로 인식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사실 김용만 선생님의 만요 가수로서의 전성기와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노래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곡의 느낌을 잘 살리셨다고 생각합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노래. 이 노래에서 말하는 청춘은 지금의 1~20대가 아니라 이 노래를 기억하고 따라 불렀던 청춘 시절의 우리가 아닐런지요.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그리운 청춘의 추억을 함께 꺼내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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